flight to jeju (2021)
flight to jeju (2021)
그러니까,
나의 첫사랑은 5월 어린이날에 설레하는 여느 아이들처럼 푸르고 순수했던 13살짜리의 풋사랑이었다. 뜬금없이 왜 첫사랑을 고백하느냐 물으면, 순전히 이 곡 때문이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동시에 조금은 서글프기도 한 멜로디는 수많았던 첫 순간의 일부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편의상 여기에 첫사랑을 H라 칭하겠다. 얼굴은 새하얗고 보조개가 정말 예쁜 아이였다. 물론 마음씨도 외모와 버금가는 고운 성격을 가졌다. 그 시절 나는 변성기도 오지 않은 또래보다 성장이 더딘 아이였는데, 그 친구는 나보다 키도 컸을 뿐만 아니라 이차 성징이 온 성숙한 친구들과 어울렸기에 다가가기 더욱더 쉽지 않은 존재였다. 그런 H와 어울릴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은 ‘공기놀이’였다. 나는 집에 돌아가면 어김없이 누나들에게 공기 기술을 배워가며, 내일은 그녀와 꼭 한 팀이 되어 실력을 뽐낼 수 있기만을 바랬다.
그러던 어느 날 H의 생일 소식을 접했다. 가장 각별하게 생각하는 친구 8명 정도만 그녀의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H에게서 몇 순위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몇 번의 공기놀이로 쌓은 우정을 통해 나는 각별한 친구 순위 5~6위 정도로 겨우 초대받을 수 있었다.
방과 후 친구들끼리 생일자 집으로 향했다. H의 집은 하천을 앞에 두고 뒤에는 산을 둔 배산임수 조건을 갖춘 2층 주택이었다. 말하자면 부러울 정도로 크고, 넓은 쾌적한 집이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거실 벽면에 붙어있는 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H의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황금 왕관이 씌워져 있었다. “저건 뭐지?” 나는 엉겁결에 말을 뱉었다. “너 몰랐어? 쟤 얼마 전에 예쁜 어린이 대회 나가서 진 탔잖아.” 옆에 있던 동찬이가 말했다.
그렇다. 나는 H가 예쁜 어린이 대회 수상자인지 전혀 몰랐다. 평소 베스트 프렌드가 아니었기에 알고 싶어도 도통 알 수 없는 것이 그녀의 소식이다. 그것도 진, 선, 미 중 ‘진’이라니. 수상 이력을 직접 확인하니 H에 대한 나의 감정은 점점 더 확신으로 가득 찼다.
생일 파티가 한창일 때 뜻밖에 일이 생겼다. 종성이가 게임을 준비해 온 것이다. 종성이는 반에서도 가장 깐족거리고 나서는 걸 즐기는 오락부장이었다. 종성이가 제안한 게임은 서로 평소 호감을 갖고 있는 이를 지목하는 진실게임으로 그날 하루만 커플을 만들어 노는 일종의 짝짓기 게임이다. 이 뿐만 아니라 짝을 짓지 못한 사람들은 그 놀이에 참여할 수 없는 짓궂은 규칙도 세웠다. 1999년 세기말 초등학생들은 참 조숙하고 잔인했다.
수줍음이 많은 내게 여러모로 충격적인 제안이었지만, 그보다 큰 걱정이 앞섰다. 짝을 짓지 못하면 그것 또한 창피한 일이고, 내 속마음을 여러 사람 앞에서 밝히자니 그것 또한 부끄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인기가 많은 그녀를 모두 다 지목할 것이 자명했기에 그만큼 선택받을 확률이 낮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놀랍게도 그녀를 지목한 사람은 딱 한 명 밖에 없었고, 심지어 둘도 없는 내 친구 동찬이었다. 배신감 비슷한 감정이 들 때쯤 마침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H를 지목했고, 이는 어린이 합창단 대회 결승전에 나간 이후로 인생 최대의 용기를 내었던 순간이었다.
H는 수줍은 미소를 짓다가 동찬이 녀석을 선택했다. 결과를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저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었다. 사교적이지만, 부끄러움 또한 많던 13살 소년에게는 인생 첫 마음의 상처였던 것이다. 커플이 된 친구들은 그래도 다 같이 모여 노는 자리이니 대승적으로 집 앞 하천 산책에 탈락자들까지 끼워주자고 이야기했다.
나는 지질함을 무릅쓰고 하천에 나가자마자 무리와 자연스레 떨어져 그 길로 집으로 향했다. 아마 분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곡은 애꿎은 하천에 돌을 던져가며 집으로 돌아가던 그때의 내 뒷모습과 어딘지 조금 닮았다. 어린 날의 설레는 마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그런 묘한 멜로디 말이다.
글_장용헌 @ryohun
아트웍_강주성 @joosung.kang